블렌디드 위스키를 이야기할 때 조니워커, 발렌타인, 시바스 리갈은 항상 이름이 오른다.
그런데 위스키를 깊이 파고든 사람들 사이에서는 종종 다른 이름이 등장한다.
"듀어스(Dewar's)는 왜 이렇게 저평가됐지?" 라는 물음과 함께.
미국 블렌디드 스카치 시장에서는 조니워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판매량을 기록하면서도,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 브랜드의 이야기를 마지막 편에서 다뤄본다.
퍼스의 왕으로 불렸던 사나이
듀어스의 역사는 1846년, 스코틀랜드 퍼스(Perth)에서 존 듀어(John Dewar)가 와인 및 주류 상점을 열면서 시작된다.
존 듀어는 당시 여러 위스키 원액을 직접 구매해 블렌딩한 후 판매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키웠고,
그의 블렌딩 솜씨는 퍼스 지역에서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진짜 전환점은 그의 아들 세대에서 찾아온다. 토미 듀어(Tommy Dewar)는 1892년 단신으로 미국 뉴욕행 배를 탔다.
당시 스카치 위스키는 미국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술이었다.
그는 2년에 걸쳐 미국 전역 26개 주를 돌며 바와 레스토랑에 직접 샘플을 들고 찾아다녔다.
이 무모해 보이는 영업 여정이 듀어스를 미국 최대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로 만드는 초석이 됐다.
토미 듀어는 그의 유명한 어록 "듀어스 원칙(Dewar's Rules)"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을 하거나, 떠나거나 둘 중 하나다"와 같은 직설적인 경구들은 당시 영국 사교계에서 회자될 정도로 유명했다.
1892년에는 영국 왕실 납품 허가를 받았고, 빅토리아 여왕에게도 공식 납품을 시작했다.
듀어스만의 차별점 — 더블에이지드(Double Aged) 공법
듀어스가 다른 블렌디드 위스키와 구별되는 가장 큰 기술적 특징은 더블에이지드(Double Aged) 공법이다.
일반적인 블렌디드 위스키는 각각의 원액을 숙성시킨 후 블렌딩해 바로 병입한다.
듀어스는 여기서 한 단계를 더한다.
블렌딩을 마친 후, 완성된 혼합 원액을 오크통에 다시 넣어 추가 숙성(Marrying)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원액들이 더 깊이 융합되면서, 블렌딩 직후보다 훨씬 일체감 있고 부드러운 풍미가 형성된다.
듀어스는 이 두 번째 숙성 과정을 "결혼(Marrying)"이라고 부른다.
서로 다른 원액들이 오크통 안에서 서서히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에 붙인 이름이다.
듀어스 핵심 라인업 정리
듀어스의 전체적인 스타일은 부드럽고 달콤하며, 깔끔한 피니시가 특징이다.
발렌타인이나 시바스보다 가볍고 가성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 듀어스 화이트 라벨(White Label): 숙성 연도 미표기 엔트리 라인.
더블에이지드 공법 적용.
꿀, 바닐라, 크리미한 곡물 풍미.
칵테일 베이스로도 널리 쓰이며, 특히 미국 바 문화에서 하이볼 재료로 많이 사용된다. - 듀어스 12년: 12년 이상 숙성 원액 + 더블에이지드.
배, 아몬드, 바닐라, 오크의 균형 잡힌 풍미. 온더록스로 즐기기 좋다.
가격 대비 퀄리티가 블렌디드 위스키 중 최상위권. - 듀어스 15년 더 몬크 크릭(The Monarch): 셰리 캐스크 피니시 적용.
건과일, 다크 초콜릿, 헤이즐넛의 풍부한 풍미.
더블에이지드 + 셰리 피니시의 조합으로 깊이가 한층 더해진다. - 듀어스 18년: 18년 이상 숙성 원액만 사용.
크리미한 바디감, 오렌지 마멀레이드, 생강, 오크의 복합적인 풍미.
발렌타인 21년, 시바스 18년과 직접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완성도.
가격은 오히려 낮아 가성비 측면에서 두드러진다. - 듀어스 25년: 최소 25년 숙성 원액 + 듀어스 전통 더블에이지드 공법.
건자두, 다크 초콜릿, 스파이스, 오래된 오크의 깊이. 블렌디드 위스키의 경지를 보여주는 완성작.
듀어스를 즐기는 방법
듀어스 화이트 라벨과 12년은 하이볼로 즐길 때 특히 뛰어나다.
미국에서 "스카치 하이볼" 하면 듀어스를 쓰는 바가 많을 정도로, 탄산과의 궁합이 좋다.
시트러스한 레몬이나 오렌지 제스트를 살짝 곁들이면 더욱 상쾌하게 즐길 수 있다.
듀어스 18년 이상은 니트 또는 소량의 물을 추가해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더블에이지드 공법의 결과물인 풍미의 일체감과 긴 여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안주로는 꿀을 곁들인 치즈 플레이트, 아몬드와 캐슈넛, 당근 케이크처럼 달콤하고 견과류 풍미가 있는 것들이 잘 어울린다.
듀어스는 마케팅에서 화려하지 않지만, 실력으로 180년 가까이 살아남은 브랜드다.
더블에이지드라는 독자적인 기술, 미국 시장을 개척한 개척자 정신, 그리고 가격 대비 압도적인 퀄리티.
아직 듀어스를 마셔보지 않았다면, 블렌디드 위스키의 세계를 절반밖에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으로 블렌디드 위스키 5편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럼(Rum)으로 찾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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